본문 바로가기

생각

(4)
이제 내 일기장은 도망가고 싶은 날들로 가득하다 더이상 바닥이 보이지않고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공책을 꺼낸다 쉽고 평화로운 날들동안 숨어있던 정신이 고개를 들고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나태와 안이함이 보인다 일기의 시작은 지난 일기의 다음부터이다 최대한 담담하게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내게 일어난 일들을 진술한다 두장이 될 때도 있고 다섯장이 될 때도 있다 마음을 떼어 놓고 사실을 보기 위해 눈을 감았다 뜬다
주인공 처음엔 곧 죽어도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원톱이었다. 찌질하고 어리석었을지라도 때로 사랑에 울기도 하고 못난 친구이기도 고집 센 딸이기도 하고 그렇게 우여곡절 이끌어온 드라마가 결혼과 함께 끝났을 때 '재미있었네..' 하며 그닥 아쉬워하진 않았다. 아이를 낳고 시작된 새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아들들이었고 나는 데뷔때부터 엄마역할만 했던 배우인 양 조연으로 엑스트라로 활약하며 몰입했다. 아니 때로 열혈시청자가 되어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 동작 하나에 환호하며 같이 울고 같이 웃고 아파했다. 아이들이 자라 서울로 공주로 같은 해에 떠났을 때 이 드라마는 끝이 났고 그 허전함은 열독하던 장편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보다 컸고, 상실감은 애정하던 드라마(주군의 태양, 괜찮아 사랑이야 같은)가 끝났을 때 이상이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을 때 간절히 주변 사람의 사랑이 필요했고 그것을 원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늘 불행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와 다른 이들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같았고 심지어 나는 그 이유 때문에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때로 열심히 살다보면 어쩌면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착하게 살자 나를 버리자 애쓰고 애쓰다보면 어느날엔가 잊혀지지 않겠나하는 욕심으로 살았고 끊임없이 희생하고 헌신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희생도 헌신도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고 스스로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했다. 누구를 아프게 했던가 누구를 괴롭히고 누구를 찌르고 베었던가. 모든 칼날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하였던가..
바보같은 일 시험삼아 공책을 펼쳐 놓고 다짜고짜 생각한 제목이 바보같은 일이다. 바보가 뭐냐..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자기가 생각하는 일 자기 마음을 모르는 게 바보다. 내가 지금 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