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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일기장은 도망가고 싶은 날들로 가득하다 더이상 바닥이 보이지않고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공책을 꺼낸다 쉽고 평화로운 날들동안 숨어있던 정신이 고개를 들고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나태와 안이함이 보인다 일기의 시작은 지난 일기의 다음부터이다 최대한 담담하게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내게 일어난 일들을 진술한다 두장이 될 때도 있고 다섯장이 될 때도 있다 마음을 떼어 놓고 사실을 보기 위해 눈을 감았다 뜬다
친구 친구 이건 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지같다. 한 푼 줍쇼 애걸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이리 많이 주어도 얻을 수 없는 것 더 오래 더 많이 기다릴 수 없는 내 탓 #親舊#貞希 친구 親舊 1.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친고2(親故).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이르는 말.
상처와 흔적 상처와 흔적 겨울의 이 나무들은 이렇게 모질게 잘라내어도 봄이 되면 어떻게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지 아픔과 아팠던 기억은 서로 다르고 상처가 주는 아픔과 그 흔적이 지닌 아픔도 서로 같을 수 없다 #傷處#痕跡#貞希 상처 傷處 1. 몸을 다쳐서 부상을 입은 자리. ≒창유4(瘡痏). 2. 피해를 입은 흔적. 흔적 痕跡/痕迹 1.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자국이나 자취.
포용과 수용 포용과 수용 널 안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래도 괜찮아 안아줄게 #包容#受容#貞希 포용 包容 1.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 ‘감쌈’, ‘덮어줌’으로 순화. 수용 受容 1. 어떠한 것을 받아들임. 2. 감상(鑑賞)의 기초를 이루는 작용으로, 예술 작품 따위를 감성으로 받아들여 즐김.
연락 연락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아서 내가 내게 연락한다 하늘이 맑은 토요일 오후 공원 의자 혹은 창넓은 카페에 앉아 하릴없이 휴대폰 연락처를 오르내리다가 카톡 친구목록을 살피다가 내가 나에게 적는다 전화 좀 해 스팸문자라도 오련만 후후가 다 차단했다 #連絡# 貞希 연락 連絡/聯絡 1. 어떤 사실을 상대편에게 알림. 2. 서로 이어 대 줌. 3. 서로 관련을 가짐.
외투 껍데기를 걸치고 웅크린 고슴도치가 되어 이른 한파에도 늦된 추위에도 갈아 입을 수 없는 단벌 외투를 꽁꽁 싸맨 채로 한 철을 지나간다 춥지도 않은데 콧물은 왜 흐르나 훌쩍이며 누가 볼세라 얼굴을 숙이고 눈가를 훔친다 바람때문이야 정확하게 몇월 며칠부터 그 속에 들어가 있던건지 알고 싶기도 하고 모른 체 하고 싶기도 하고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어깨를 우그리며 날씨 탓하기 바쁜 계절을 지나간다 볕을 보지 못한 가시가 자꾸 파고든다 #外套#貞希 외투外套 추위를 막기 위하여 겉옷 위에 입는 옷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오버(over).
생활 생활 살아라살아라눈물흘리며아련하게 아련한울음너머고개고개아리랑고개 고개를삐딱하게숙이고아픈매를참아가며 참았다가터지는오열끝에떠오르도록 떠올라둥둥떠내려가도모르게나도모르게 몰래펼치는편지십리를못가서거기서적어 적어보낸살아라살아라눈물흘러도모질게 모질어도삶은아련하나생활은독하다 #生活貞希 생활生活 1. 사람이나 동물이 일정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살아감. 2. 생계나 살림을 꾸려 나감. 3. 조직체에서 그 구성원으로 활동함. 4.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아감. 또는 그런 상태.
주인공 처음엔 곧 죽어도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원톱이었다. 찌질하고 어리석었을지라도 때로 사랑에 울기도 하고 못난 친구이기도 고집 센 딸이기도 하고 그렇게 우여곡절 이끌어온 드라마가 결혼과 함께 끝났을 때 '재미있었네..' 하며 그닥 아쉬워하진 않았다. 아이를 낳고 시작된 새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아들들이었고 나는 데뷔때부터 엄마역할만 했던 배우인 양 조연으로 엑스트라로 활약하며 몰입했다. 아니 때로 열혈시청자가 되어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 동작 하나에 환호하며 같이 울고 같이 웃고 아파했다. 아이들이 자라 서울로 공주로 같은 해에 떠났을 때 이 드라마는 끝이 났고 그 허전함은 열독하던 장편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보다 컸고, 상실감은 애정하던 드라마(주군의 태양, 괜찮아 사랑이야 같은)가 끝났을 때 이상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