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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엄마시점

전지적엄마詩점 1화 - 윤동주/소년

요 女의 이름은 '순'입니다. 차순(車順).
온고지신의 정신을 되살려 제 아빠가 지어준 이름인데 자기 입으로 촌스럽다고 하긴 그랬던지 왜 일순(一順)이 아니고 차순(次順)이냐며 맞지 않는 한자를 들먹거리며 유식한 척 제 이름에 딴지를 걸고 넘어질 때면, 일씨가 아닌 것이 내 탓은 아니지 하며 웃어 넘기는 아빠 앞에서 나름 원망 섞인 투정을 부려오던 녀석입니다.
사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던 제 아빠, 차진구씨는 순이 어쩌고 하는 시구에 꽂혀 하나뿐인 - 그때는 하나뿐일 줄도 몰랐지만 말입니다 - 딸아이의 이름을 고색창연한 '순'으로 지어놓고 자고 있는 요 女의 머리맡에서 매일 시를 읊으며 기도 아닌 기도를 하기도 했구요.
그래서인지 문학소년 감성을 지닌 제 아빠를 닮았는지 요 女도 재수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간신히 문닫고 들어가긴 했는데요 그후로 코빼기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윤동주/소년